폐회 메시지

 

고통 하는 시대와 성경

 

말씀; 디모데후서 3:1-17

요절;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지난 50년 동안 UBF를 통해서 캠퍼스 제자양성과 평신도 자비량 세계선교 역사를 왕성하게 이루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위대한 축복과 승리의 역사를 이루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우리와 계속해서 함께하여 주시며, 캠퍼스 제자양성과 세계선교 역사를 왕성케 하시고 위대한 승리를 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고통 하는 시대와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순교직전 에베소 교회를 책임 맡고 있는 디모데에게 쓴 서신입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는 거짓 스승들의 가르침으로 인한 분쟁과 혼란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타락의 물결이 교회 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진리의 터는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딤후 2:18). 바울은 이런 고통 하는 시대 속에서 에베소 교회를 책임 맡고 섬기고 있는 디모데를 위해 기도하며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제 1장, 네가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1-9).

1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라는 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앞을 내어다보며 디모데에게 교회들이 빠져들어 가고 있는 위험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교회들이 빠져들어 가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위험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면 교회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고야 말 것입니다.

 

바울은 말세에 어떤 때가 이르리라고 경고합니까?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고통 하는 시대는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어집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 교회와 공동체 안에 시기와 분쟁이 일어나고 싸움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뒤따라서 계속해서 끔찍한 증상들이 나타나다가 마지막으로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로 나아갑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는 것은 금지된 쾌락에 탐닉하는 것을 말합니다. 쾌락에 대한 무절제한 탐닉은 영혼의 빛을 어둡게 하고 도덕적 양심 신앙적 양심을 손상시키며 파멸을 재촉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대적하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합니다. 그들은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사람들입니다. 말세를 향해 갈수록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이들은 그 시대를 끔찍한 고통의 시대로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라는 말씀을 볼 때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사람들이 외적으로는 신앙인이요, 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그들이 입술로 고백하는 신앙과 진리를 따르고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힘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 공동체가 부딪치고 있는 위기의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죄악의 물결은 교회 공동체 안에도 밀려들어와 우리들의 영혼을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사탄의 강력한 역사로 인하여 세상의 넘실거리는 죄악에 감염당한 우리는 점점 진리에 대한 믿음과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훌륭했던 믿음의 동역자들이 죄악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이제는 유혹하는 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한때는 복음신앙에 굳게 서서 신앙의 향기를 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세상의 죄악과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생활방식을 부러워하며 이를 배우고 본받아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로서 정체성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자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경건의 능력은 상실한 자들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자들은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리는 가엾은 여자들을 은밀히 유인하여 자기 임의대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항상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요, 그 마음이 부패한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입니다. 그들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모양만 내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저희의 어리석음은 마침내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제 2장,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0-17).

진리를 대적하는 거짓 스승들이 가득 찬 세상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본받고 따라가야 할 모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자생활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거짓 스승들과 달리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삶과 행실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었습니다. 그는 연약한 영혼을 위해 오래 참음으로 사랑하며 인내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특히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는 죽음의 문턱에 갈만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바울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는 어떤 한 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깨우쳐주고 있습니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자기를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살고자 한다면 고난과 핍박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고난과 핍박이 없는 안일하고 위선적인 삶을 살아갈 때 어떻게 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지고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우리의 위선과 타락은 어떤 선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악하여지고 점점 더 타락하여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4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배웠고, 그 배운바 복음 진리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우고 확신한 진리위에 굳건히 서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교회와 양 무리들을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하였습니다. 세상은 죄악의 물결로 넘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죄악의 물결은 교회 안에까지 밀려들어왔습니다. 교회 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어오는 그 죄악의 물결에 감염된 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었습니다. 진리의 터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딤후 2:18). 교회 안에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점점 싫어하고 감각적이고 즐거운 것들, 새로운 것들만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복음 역사는 날로 어려워져 갔습니다. 디모데는 이러한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과거와는 현저히 달라진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섬겨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배워왔고 확신했던 전통적인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지켜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된 상황에서 현저히 변화된 새로운 세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길과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지’ 갈등하게 되었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이런 디모데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했던 일에 계속해서 거하라고 분명하게 권고합니다. 거하라는 말씀은 ‘continue in’입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거하라는 뜻입니다. 디모데는 왜 지금까지 그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계속적으로 거해야 합니까? 14b-15절을 보십시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가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한 일은 인간의 생각이나 사상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사상은 변하고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변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인간의 생각과 사상이 아무리 변하고 삶의 방식이 변하고 가치관이 아무리 변한다 할지라도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 모든 것들이 흔들 흔들거릴지라도 하나님의 진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디모데는 지금까지 성경말씀을 배웠고 성경말씀의 진리에 대한 확신 속에 거하여 왔습니다. 그는 그가 지금까지 배웠고 확신했던 그 진리에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것이 끔찍하게 변해가는 고통 하는 시대에 직면하여 그 시대를 섬기기 위해 갈등하고 고민하는 디모데를 향해 주신 사도의 말씀이요 영적인 방향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급속도로 변화되어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UBF가 탄생했던 60년대와 캠퍼스 복음역사가 왕성했던 70년 80년대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세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악의 물결이 거세고, 그 거센 물결에 쉽게 감염되어가고 있는 이 세대를 섬기는데 많은 어려움과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길과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대안들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이 고통 하는 시대를 섬길 수 있는 보다 좋은 길과 보다 좋은 방법과 보다 좋은 대안들이 있다면 찾아보고 시도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난 90년대부터 변화해가는 시대를 섬기기 위해서 좋은 길과 좋은 방법과 좋은 대안들을 찾고자 많은 시도를 하여 왔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힘든 일대일을 통한 제자양성을 포기하고 성령 은사운동을 해보고자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일용할 양식이나 소감쓰기를 폐하고 아무 부담 없는 신앙생활을 해보고자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깊이 있는 말씀공부와 소감훈련보다 경배와 찬양을 통해서 젊은이들을 모이게 하고자 시도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기 개척 조상때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일대일 성경공부, 일용할 양식, 소감쓰기, 오병이어의 주는 정신, 개척정신, 공동체 정신, 자비량 정신보다 더 좋은 제자양성, 더 좋은 선교사양성의 길과 방법과 대안들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 안에서 역사하였던 그 사역과 정신이 어떤 좋은 사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면, 그것들이 오직 UBF에서 시작한 독특한 정신과 독특한 사역이라면, 우리가 계속해서 그 정신과 그 사상과 그 사역 안에 거하여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사상과 정신에서 나온 것들은 유한한 것들이며 언젠가는 변하며 무너져 내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여왔던 정신과 사역은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의 정신과 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UBF의 독특한 정신과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 성경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중심의 사상, 오병이어의 주는 정신, 구유정신, 제자양성, 일대일을 통한 인격적인 성경공부, 소감쓰기, 자비량 선교사 파송 등 모든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배웠고, 확신했고, 이 진리에 순종하여 거함으로 하나님은 지난 50년 동안 우리를 놀랍게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확신했던 이 진리에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 안에 거하는 정신과 사역이 약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회개하고 더욱 더 이 진리에 신실하게 거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진리에 신실히 거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 하는 시대의 끔찍한 죄악에 감염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고 확신했던 이 진리에 신실하게 거할 때 우리는 경건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덧입고 이 고통 하는 시대를 승리하며, 이 고통 하는 시대를 능히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성경의 진리 안에 굳건히 신실하게 거할 때 성경은 고통 하는 시대를 섬기는 우리에게 어떤 위대한 희망과 축복을 줍니까?

첫째,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 이는 모든 인간이 얼마나 사모하는 것입니까? 구원만큼 좋고 위대하며 영원한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을 다 소유하고 있다 하여도 구원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며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소유가 비록 부족하다 하여도 구원을 받은 우리 선교사님들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며 진정으로 행복하고 부요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많은 책들과 많은 지식에서 얻었습니까? 우리는 캠퍼스 시절 성경 말씀에 초청을 받았고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성경말씀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디에서도 가난과 운명과 열등감과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로 고통 하는 나의 영혼을 구원할 지혜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 앞에 나아와서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겸손히 성경 말씀을 믿었을 때 가난과 운명과 열등감과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로 고통 하던 나의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에는 “예언은... 오직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니라”(벧후 1:21)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은 얼마나 위대한 말이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입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할 때 평범한 사람이 온전하여지고 위대하여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할 때 한 가지 선한 일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던 사람들이 모든 위대하고도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여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 하였을때 우리 선교사님들은 이 땅에서의 안정된 집과 가정과 좋은 직장과 장래의 Security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아프리카로, CIS로, 중동으로, 인도로, 중국으로, 남미로, 호주로, 유럽으로, 북미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비량하며 희생적으로 캠퍼스 제자양성과 세계선교에 헌신하여왔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하였을 때 수많은 현지인들이 회개하고 캠퍼스의 목자들로 성경선생들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 하였을때 현지인 목자들이 제3국으로 자비량 선교사로 나아가 캠퍼스 제자양성과 세계선교에 헌신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킵니다. 죄에 연단되어 완악해지고 강퍅해진 심령들,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이 세대를 우리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할 때 죄에 연단되어 완악해지고 강퍅해진 심령들,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심령들이 물같이 녹아지고 변화되어 거룩한 백성들 왕 같은 제사장들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50년의 UBF 역사를 돌아볼 때 한국의 전 캠퍼스를 개척하고 세계 87개국에 자비량 선교사를 파송한 이 놀랍고도 위대한 역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신 역사입니다. 우리 힘으로 누구 한 사람을 아프리카에 CIS에 인도에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었겠습니까? 체르노빌 방사능의 공포가 온 유럽을 뒤덮고 있을 때 누가 피터김 선교사와 사라 선교사를 키에프를 떠나지 아니하고 그곳에서 순교하고자 결단케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신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하는 곳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말세에 고통 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섬기고 있는 사역에 많은 장애물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심령에 실망감과 좌절감이 밀려들어옵니다. 그러나 지난 50년의 UBF역사를 돌아 볼 때 놀랍고도 위대한 역사들은 영적인 환경과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룰 수 있었던 역사가 결코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성경 말씀으로 죄인의 심령에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친히 이루신 역사입니다.

 

서울대 개척을 시작했을 때 이 사무엘 선교사님은 6년 동안 매일 아침 오전 시간을 온 마음을 바쳐 성경말씀을 묵상하시고 연구하시며 일용할 양식 집필에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무엘 선교사님에게 서울대 학생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불꽃과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때 이 사무엘 선교사님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와 광고 한마디 한마디가 서울대 학생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서울대 청년들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청춘을 불살라 하나님께 헌신하는 역사가 불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서울대 청년들이 목자요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버리고 ‘Full time 목자’가 되기도 하고, 언제 누구와도 결혼하여 선교가정을 세우고 전 세계로 선교사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감동은 인간의 생각과 이성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진실로 이 시대의 희망은 캠퍼스의 영적 환경과 조건이 좋아지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지식을 많이 쌓는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 시대의 희망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에 붙잡히고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떤 대륙 어떤 나라 어떤 캠퍼스에서 개척역사를 섬기고 있던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하게 쓰실 것입니다. 위대한 개척자들로 위대한 제자 양성가들로 위대한 선교사를 파송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위대하게 쓰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이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온 마음을 바쳐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바쳐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성경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2-3)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할 때 우리는 이 말세의 고통 하는 시대 속에서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마르지 아니하고 가뭄을 타지 아니하고, 시절을 좇아 풍성한 과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바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함으로 늘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감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Mission Field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감동의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Caleb Kim
자신의 무능함을 깊이 깨닫고 새벽기도에 생명걸고 오병이어로 드리고자 하는 목자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권능으로 종로1부가 성서한국의 선봉 챕터요 세계선교의 파워스테이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